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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먹기/신약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고린도후서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대적자들은 바울이 세상의 표준대로 산다고 헐뜯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비록 바울이 세상에서 살기는 하지만 세상과 같은 혈육의 싸움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한 요새라도 파괴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그는 복음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이론과 하나님 아는 지식을 대적하는 교만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켰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세상의 헛된 이론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해야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울의 외모만 보고 비난했습니다(7). 그들은 바울이 편지로는 큰 소리를 치지만 실제로 만나면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바울이 일관성 없이 행동하는 비겁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만날 때에 온유하게 대하는 이유는 그들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8). 그러나 만약 비난하는 자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바울은 사도로서의 권위와 능력을 행사할 것을 경고했습니다. 바울은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들과 비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표준으로 자신들을 재고 스스로를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정해진 한계를 넘어서는 자랑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영역 안에서만 자랑했습니다. 그는 주제넘게 다른 사람들이 수고한 것을 이용하여 자랑하지 않았습니다(15). 진정한 자랑은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18). 자랑하는 자는 주님 안에서 주님이 이루신 일을 자랑해야 합니다(17).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 것처럼 떠벌려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에 대한 대적자들의 공격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해 직접 대면하면 유순하고, 편지를 통해서는 엄격하고 담대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이 겉과 속이 다른 겁쟁이일 뿐이라는 비난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본인이 육신에 따라 싸우는 자들이 아니요, 또 대적자들이 의지하는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는 자임을 말합니다. 실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고 모욕받을 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모든 헛된 것들을 폭로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 역시 그러합니다. 또 하나님의 권세는 성도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성도들을 세우기 위한 것이기에 때로는 엄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매우 온유한 것입니다. 둘 다 목적은 성도를 복음 위에 굳게 세우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엄격하게 대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으로 살아가면서, 때로는 사람들에게 험담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성도로서 정말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10:17,18).” 적어도 주님 안에서 한 일에 대해서는 주님 앞에 선 자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옳음을 인정 받을 자는 주께서 칭찬하시는 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이 주님 앞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이 은혜 안에서 살기 원합니다. 저는 바리새인입니다. 주위의 이목을 너무 신경 씁니다. 하나님 앞보다 사람 앞에서 살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한 마디에 심령이 뒤흔들리는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 하지만, 제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임을 기억케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같이 사람의 무성의한 말 한 마디에 심령이 흔들리는 심령에 주의 은혜의 빛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나의 삶을 주께서 아시오니, 저는 다만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제 삶을 드립니다. 주님, 날 다스려 주시고 제 심령에 평화가 있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