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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먹기/신약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신 예수님

마태복음 27: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예수님은 골고다에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시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모든 고난을 회피하지 않으시고 다 감당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감당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난 받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그 때와 동일한 마음으로 우리를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 예수다 라고 쓴 죄 패를 걸어 놓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 좌우로 두 강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님은 두 강도들 가운데 매달리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죽기까지 죄인들과 함께 하시며,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주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고통은 참을 수 없이 컸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욕을 하며 조롱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도 희롱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들은 예수님이 힘이 없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를 구원하지 않으신 것은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이 죄의 형벌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에게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실제의 일입니다. 그곳에는 어떤 낭만도, 목가적인 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지금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공포의 상징이던 기요틴도, 어떻게 보면 여기에 비하면 나은 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단 순간에 사형수를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끔찍한 형틀에서 서서히 죽으셔야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죽으셔야 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가련하고 가난하며 헐벗은 파멸의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이런 끔찍한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곳곳에 전쟁이 있으며, 잔혹한 악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달콤한 사랑 노래를 들으며, 웃고 있는 가운데서도 세계의 어느 곳에는 인간다운 삶 한 조각도 누리지 못한 채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이런 죄가 들어왔으며,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심은 우리 인간의 죄와 사망과 부패함과 악이 얼마나 극심한 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것조차 세상에서 환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고 무정하게 그리고 비웃듯이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지고,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붙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모욕하며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27:40,42).” 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지금도 이 십자가가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이라 하면 순순히 이를 영접할 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죄 때문에,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온갖 치욕과 수모 가운데서도 그 고통의 십자가에 매달리셨다고 말하면,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으셨다는 것을 말하면 누가 이를 영접합니까.

사실 저 역시 예수님이 싫었습니다. 너무나 나약하고, 실제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시는 분이라며 군 시절 성경책을 화장실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내게 강한 구원자가 필요했지... 이런 연약한 분은 필요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십자가 도상에 내가 있었더라도 똑같은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내게 임하였습니다. 그 분이 주신 은혜는 세상의 힘센 권력자가 주는 것 같은 그런 은혜가 아니라, 약함 가운데 강한 그런 은혜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를 온전히 살리시기 위해서 나를 위해 희생하신 것이 진정 강하신 그런 것이었다는 것을... 나약한 것을 부끄럽게 보시지 않으시고, 그 가운데 함께 하사 나약함 가운데 영광을 보이셨다는 것을...

아직도 예수님의 은혜를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습니다. 저는 역시 깊이 병든 바리새인인가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교만에 겸손으로 갚으셨고,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신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 받지 않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진정 강한 은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 은혜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 때, 정말로 낮아지고, 내게 주신 십자가로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게 저의 본성에는 너무나 맞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가 이 죄인을 뒤흔들 때, 저도 예수님처럼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이 예수님을 알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