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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먹기/신약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고린도후서 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이들은 바울은 사도가 아니기에 그런 것이 아니냐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이 행한 모든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사도의 표시임을 밝힙니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들에게서 생활비를 받지 않은 것뿐이라고 말합니다(13). 바울은 세 번째로 다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한다 해도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성도들 자신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것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기꺼이 드리고자했습니다. 자신은 이렇게 성도들을 사랑하는데 성도들도 자신을 사랑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호소합니다. 표적과 능력뿐만 아니라 양들을 위한 헌신이야말로 사도의 표시입니다.

  이제까지 바울이 자신을 자랑한 것은 자기변명이 아니라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자신에게 있지 않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강건하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바울은 세 번째 고린도 방문을 앞두고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먼저 성도들의 다툼과 혼란을 보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19). 또 바울은 전에 죄에 빠졌던 사람들이 더러움과 음란과 방탕한 생활을 회개치 아니함을 두려워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그런 자들이 있다면 회개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학교에 있으면서, 이런 저런 종교적 권유를 많이 받아온 편입니다. 특히 저에게 맹렬하게 ‘도를 아십니까’ 물어 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분들은 권유를 하는 사람에게 물질적 요구를 하곤 하였습니다. 일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일입니다) 제가 이 분들에게 음료를 대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전도를 하면서 뭔가를 줍니다. 혹자는 나중에 더 뜯으려고 그런다고 의심을 품기도 합니다만, 참된 교회는 돈의 관계성을 맺기보다 사랑의 관계성이 맺히기를 바랍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 성도들 간에 사랑의 관계성이 맺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물질을 드리는 것, 헌금 내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이 겉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돈 자체에 얽매이곤 합니다. 또 세상에서의 가치관은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의 관계성을 맺자 하니 덜컥 의심이 드는 게 어떻게 보면 인간의 죄악된 본성 상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며, 결국 사도 바울이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사실이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어떤 물질적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의심의 빌미가 되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안에서 고린도 성도들과 사랑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들 자신, 그들의 진실된 마음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교회의 덕이 세워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도 이런 사랑이 맺어지기를 저에게 바라십니다. 아.. 정말로 저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게 많습니다. 정말로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굴러 들어온 하나님의 복을 도리어 의심하여 걷어찰 때도 참 많았습니다. 제가 드리는 매일의 헌신도 때로는 ‘까라면 까는 것’처럼 드렸습니다. 헌금도 의무적으로 드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말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묵상할수록,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수록,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심을 알고 믿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쉬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나온 사도 바울의 사랑의 마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깊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고질적인 저의 의심이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뒤흔들리고 붕괴되기를 바랍니다.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아낌없는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자리잡기를 간절기 기도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