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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신약

양심에 따르는 복종(로마서 13:1-13:7)

양심에 따르는 복종

로마서 13:1-13:7
로마서 13장 5절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니라.”

오 늘 13장 1절부터 13장 7절까지의 말씀은 상당히 전하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오스카 쿨만은 특히 본문 2절에 대해 해석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신약에서 이 말처럼 빈번하게 오용된 말은 거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에 충성하기 위해 국가의 전체주의적 주장에 저항을 하는 순간, 국가의 대표자들 혹은 그들에게 협력하는 신학적 조언자들은 바울의 이 말에 호소하기 마련이다. 마치 이 본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체주의 국가의 모든 범죄를 승인하고 따라서 교사하도록 명령하고 있기나 하듯이 말이다.’ 성경은 오독하여 사용하는 경우 이 악영향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구소련의 끔찍한 독재자, 스탈린이 사랑했던 성경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였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표어로 걸고 지식인과 기업가, 부농들을 박해하여 시베리아 형무소로 보내 많이 죽였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볼 때, 우리는 주의 깊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문 1절을 보십시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일반적으로 성경학자들은 여기서 말하는 권세는 국가와 국가의 공식적인 대표자라고 보고 있습니다. 보다 더 이 외연을 확장하면, 대학교에서의 교수님, 집에서의 부모님, 직장에서의 상사, 그리고 센터에서는 1:1 목자님을 이 권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런데 사도 바울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복종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국가와 그 대표자, 그리고 우리 윗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정하신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질서를 거스르고 반역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어기는 것이고 따라서 이를 거스르는 이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처럼 국가와 뭇 권세 자체는 사실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특히 본문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럼 위에 있는 권세, 특별히 국가와 공직자가 가지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본문 3절을 보면 “선을 행하면 그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즉 선을 행하는 이를 칭찬하고 장려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또 둘째로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즉, 악을 행하는 이에게 하나님을 대리하여 징벌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전쟁을 수행하고 재판하며 사형을 비롯한 형벌을 가할 수 있는 권리, 즉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담당하지 못하는 국가 고유의 역할인 것입니다.

그 러나 우리가 알듯이 국가와 뭇 권세는 종종 타락해 있고, 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여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게쉬타포가 지배하고 유태인 학살과 공포와 폭압이 지배하던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국가가 하나님께서 두신 이런 목적들을 수행했다고 어느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이 펼쳐지던 아파르트 헤이트가 횡행할 때의 그 남아프리카 정부를 가리켜 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있다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때, 일제가 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행하였습니까? 그런데 몇몇 교회는 이런 불의를 행하는 국가와 위정자들과 공직자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고, 또 이에 굴종하였습니다.

오 늘 본문 요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니라(5).”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국가를 비롯한 윗 권세를 복종하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어두신 선량한 양심에 비추어 복종해야 합니다. 일례로 과거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힘써 복음을 증거하다가 대제사장들이 이를 막았을 때를 기억해보십시오. 그 때에 사도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위의 권세에 복종하되 선하신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복종해야 합니다. 만약에 세상 국가와 위정자들과 공직자들이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어 행동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굴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는 국가와 위정자와 뭇 윗 권세를 깊이 존중하고 하나님 안에서 또 복종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 래서 우리는 국가에 세금을 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더욱 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국가와 위정자들, 공직자들을 위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 이 권세들을 통해 더욱 잘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위정자요 공직자이거나 윗 권세에 앉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열심을 내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국가와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어 일할 때, 이 세상에 질서가 자리 잡고 하나님의 평화가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늘 말씀에서 저는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에 대한 하나님의 방향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작년 늦봄에는 광우병과 관련하여 대규모 촛불 시위가 있었고, 이에 대해 정의롭지 못한 폭력적인 진압이 있고 곧 충돌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일이 지나간 지금에는 국가와 위정자들,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싸늘한 적대감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현 시대의 모든 갈등의 근원은 아닐지라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여기서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처럼 양자의 대립 관계와 서로를 배척하는 생각 모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이 나라와 위정자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회복해야 합니다. 위정자요 공직자인 기독교인이라면 선과 악을 제대로 분별하고 이에 따라 행하고 있는 지를 하나님 앞에서 물어봐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회개하여 어떻게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열심을 내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저 역시 공무원이 되었을 때 이런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런 갈등과 분쟁의 시기에 먼저 윗 권세를 존중하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세우심을 믿고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특별히 이 국가와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뜻대로 만약 국가와 위정자들이 행하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선한 양심에 따라 불복종도 할 수 있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데 쓰임 받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