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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신약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19-1:42)

요한복음 1:19-1:42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그 분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였습니다(요 1:6). 그런데 요한복음은 이 세례 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대부분이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일컬어 증거하신 것을 볼 때, 이는 특이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증언보다 예수님을 잘 드러낸 바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증거하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깊이 알고 이 예수님을 앎으로 생명이 충만한 인생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례 요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기 위한 삶

한창 세례 요한의 사역이 열기를 더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그의 활동을 모니터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 사역 조사단이 파견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는 세례 요한의 사역이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적인 참여를 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이 주관하는 성전 제사는 그 실행이 매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점도 많았습니다. 또 바리새인들이 중점을 두고 있는 율법 교육과 율법 준수는 수많은 공부 기간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또 실제로 이를 준수한다는 것은 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사역은 세례였습니다. 그가 요구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세례였습니다. 그만큼 단순하고 명료했던 것입니다. 그의 사역은 종교적 절차나 율법적 교리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단순했기에 수많은 유대인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아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서, 점점 이 역사가 확대되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중죄인인 세리와 군병들도 회개하고 세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이처럼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하나님께 회개하고 세례를 받자 유대 당국자들은 매우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종교적 권위를 빼앗길까봐 예의 주시하다가 결국 이처럼 조사단을 파견하여.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그를 헐뜯을 구실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

그럼 이 조사단에 대해 세례 요한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엘리야도 아니라”, “그 선지자도 아니라.” 이처럼 세례 요한은 조사단이 묻는 질문인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모세가 지칭한 그 선지자냐”라는 질문에 모두 No!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엘리야는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증언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세례 요한은 모두 No!라고 대답하였을까요.

이는 세례 요한이 오직 자신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 오직 자신의 뒤에 오실 이에게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오실 예수님만을 드러내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라고 자신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오직 ‘소리’로서 자신을 지칭합니다. 소리는 형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만 마친 채 사라질 따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존귀하게 드러내고자, 세례 요한은 자신을 드러낼 모든 것을 부정하고 오직 소리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세례 요한의 이런 답변에 조사단은 세례 요한의 세례가 가지는 정당성에 대해 태클을 겁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이럽게 답합니다.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27)” 세례 요한은 자신이 주는 세례의 정당성을 변호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뒤에 임하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고자 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그럼 뒤에 오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실까요. 이튿날 세례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신 예수님을 보고 외칩니다. 29절 말씀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 그가 예수님을 보고 외친 이 말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토록 갈망하고 기대하던 ‘메시아’를 본 감격이 충만하게 담긴 음성이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은 본인이 밝혔듯이 메시아가 아닙니다. 메시아는 오직 세상 죄를 짊어지고 속죄 제사의 어린 양처럼 죽임을 당하여야 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도, 물로 세례 주는 것도 세례 요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 인류의 죄를 지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 문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고, 이 분께서 택하신 방법은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는 자마다 모두 성전의 제사 제도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성전 제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씻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흠없고 점없는 양을 대속 제물을 택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양에게 제사장은 그 사람의 죄를 전가하기 위해 안수하였고 또 그 양이 피흘려 죽음으로 그 생명을 대가로 그 사람의 죄는 사하여졌습니다. 

하지만, 그 양의 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죄가 사하여졌으나 완전치 못했습니다. 다시 죄를 범하면 다른 속죄양을 잡아 또 죽여야 했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죄의 권세에서 해방할 수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제사 후에도 죄의 속박 하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모양으로 무죄하게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믿는 이들마다 단번에 죄사함을 받고, 그의 죄에 대한 형벌과 정죄가 도말되어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양을 잡을 필요도 없이 오직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죄 사함을 구하면 됩니다. 바로 이 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합하여 믿는 이들은 더 이상 죄의 소유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요 귀중한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은 세례 요한 뒤에 오셨지만, 그보다 앞서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작아져야 했던 것도 이 예수님만이, 이 세상에 참된 구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삶이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님만을 드러내는 삶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성령 세례를 베푸시는 이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32, 33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것은 즉 거듭남, 즉 성령께서 내주하사 우리 영을 살리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 예수님을 보며 예언하였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에게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 세례를 베품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자발적으로 행하고자 하게 됩니다. 죄악에 대해서 회개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하나님을 거역하던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고난과 절망 가운데서도 영원한 기쁨과 생명, 그리고 평화가 끊임없이 솟아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자발적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시작합니다. 거듭남으로써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새로운 본성,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 죄를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며, 뿐만 아니라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만이 온 세상의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과거 어둠 가운데 머물러 있던 저와 우리 인류에게 이처럼 놀라운 은혜와 진리를 베푸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의 반응: 보라!

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 분은 죄악으로 가망없이 죽은 이 세상에 당신의 대속의 죽으심을 통해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자, 성령 세례를 주심으로 우리 인생을 변화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나 이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럴 때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있습니다.

때때로 미래가 불투명한 이 시대를 살아가기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경제 위기의 소식들과 청년 실업, 취업 대란, 이상 기후 현상, 자연 재해, 그리고 소리를 높이는 대북 관계 문제까지 좋은 소식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한 시간 강사분이 교수 임용 비리 문제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와 이에 관련하여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기까지도 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정말로 어려운 시대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욱 답답해지기까지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여전히 가득하고도 강력하게 있는 죄의 세력을 생각하면 탄식이 나옵니다. 아직도 과거의 나태한 행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음란과 정욕, 교만과 시기의 죄악들이 저를 넘어뜨리려 하고 또 때때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목자로서 세움을 받고 또 주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한 열정은 있지만, 좀처럼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 내 모습을 보고 탄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에게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이인줄 알라.” 즉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눈을 돌려라! 이 예수님께 집중하고 그 분을 믿음으로 하루하루 나아가라!”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 영원토록 함께 하실 하나님의 보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대속의 죽으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당신의 나라에 합당하게 변화시키실 것이고, 또 이 어려운 환난 가운데서도 넉넉히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 삶에 품으신 그 선하신 뜻을 이루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영광받으실 줄을 믿습니다.

이제 이 외침은 비단 저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이인줄 알라!” 이 복된 음성이 고대 캠퍼스, 온 열방의 캠퍼스에 흘러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온 캠퍼스에 이 복음의 말씀이 넘쳐흘러서 학생들이 구원의 소망을 품고 예수님께 나아와 구원받고, 거듭나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이번 여름 수양회가 슬픔과 운명, 죄악에 짓눌린 영혼들이 구원받고 다시 태어나는 성경 말씀과 성령의 축제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북한 땅에도 이 음성이 필요한 줄을 압니다. 얼어붙고 소망 없는 땅도 구원 받는 이로 넘치는 비옥한 땅으로 바꾸는 것,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이를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늘 전쟁의 기운만이 있는 이 땅 위에 평화가 오려면, 복음이 북한 땅에 선포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목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처럼 구원을 위해 바라볼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제가 날마다 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구하는 자 되게 하여 주시옵고, 또 나보다 이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외치는 목자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