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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신약

성탄절의 슬픔과 비극에 부쳐

사실 성탄 스토리를 보면 외면상 슬픔과 비극의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의 구주로 오신 이는, 갈릴리 두메 산골 깡촌의 가난한 처녀에게 잉태되셨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그 동네 가난한 목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땅은 이방 나라 로마의 반 식민지 상태였고, 그들의 대리자인 헤롯 왕은 공포 정치를 행하며, 가난한 백성들은 로마와 세리들의 이중 수탈 속에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실 즈음에는, 로마 제국이 세수입 증대를 위해 이스라엘에 호적 명령을 내렸고, 이를 위해서 모든 백성들은 호적 신고를 위해 본적지로 가야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만삭이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변변찮은 교통 수단도 없던 때, 갈릴리에서 저 남쪽 베들레헴으로 위험한 여행을 해야 했습니다. 또 막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실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던 탓에 가난하던 그의 부모는 여관방을 구하지 못했고, 사람들의 냉대 속에서 겨우겨우 마굿간 구유에서 그를 출산해야 했습니다.

 

또한 권력에 미친 헤롯 왕은 자신의 경쟁자를 없애려고, 베들레헴에서 대량의 영아 학살을 저지르면서까지 그를 죽이려고 들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아이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성탄 이야기는 이처럼 슬프고 비극적인 인간사의 모든 더러운 모습이 적나라하게 다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도 성탄절에 꼭 좋은 일만 있지 않습니다. 특히 전쟁 때에는 기습하기 좋은 때라 여겨, 성탄절 날에 큰 전투가 벌어질 때도 많았습니다. 또 어이없는 불의한 재판과 각종 범죄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왜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심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낮고 비천하며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몸으로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때와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어디에서는 인간사의 별의별 더러운 꼴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꼴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그것이 성탄의 첫째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이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죄와 사망에서 해방하시며, 더 나아가 자신의 자녀로 삼으십니다. 이것이 성탄의 둘째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반드시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도장 찍으신 하나님의 변치 않을 약속입니다. 이 땅 아래의 질서와 뜻과 원칙이 아니라, 그것이 백년, 천년, 만년 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역사의 완성, 역사의 끝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셋째 의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놀라운 소식입니다. 성탄이 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소식을 근대 지식인들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합리주의 세계관에 적용했습니다. 이것이 18~20세기 역사를 이끌었고, 지금도 신기루처럼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이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20세기 많은 사람들이 그 ‘진보’의 결과물에 실망하였고, 이제는 많이 지친 탓에 ‘진보’라는 이 단어가 달콤하지는 않습니다. 또 ‘황의 법칙’이나 ‘애플의 혁신’ 말고는, 사람들에게서 회의적인 단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보의 부침이 어떻든 성탄, 복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 약속은 허무맹랑한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그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그 피로 도장 찍으신 영원하고 변함 없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슬픈 소식, 성탄절에 들려오는 비극적인 소식에도 마음 아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고통 받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고통은 우리와 함께 하심이며, 그 고통이 영원하지 않을 뿐더러, 기쁨으로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그러니, 오늘 지치고 고단하고 슬픔에 젖은 마음을 털어버리고, 내일도 모레도 우리에게 주실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전진하고 또 전진하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