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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신약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서 13:8-13:14)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로마서 13:8-13:14
로마서 13장 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어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권세에 복종하되 양심에 따라 할 것이며, 또 실질적으로 조세와 관세를 내는 등의 의무를 통해 이를 실천하도록 권면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빚 외에는 다른 빚을 져서는 안 됩니다. 어제 살펴본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조세와 관세의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또 세상이 가면 갈수록 발달하여 자동차 할부, 카드 할부, 여러 이자 체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를 연체하는 것은 사실상 빚을 지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빚이 쌓이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복음을 가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빚을 짊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그럴 때, 그냥 지나침으로 빚을 지는 삶을 살지 말고, 감사하며 어떤 모양으로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빚을 지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은 간단히 살펴보면 “오직 사랑의 빚만 짊어지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빚만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그 분은 죄인이요 원수 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어 주시고 이를 통해 우리를 구속하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심으로 당신이 사랑 그 자체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 어떤 자였는지 스스로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랑의 빚 진 자임을 고백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빚진 자로서 이 사랑을 본받아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실상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십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계명과 이웃을 향한 계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명들이 율법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향한 계명,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마라 한 것과 그 모든 계명이 한 말씀으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계명과 율법은 소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정해진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계명과 율법 가운데 있되, 더 나아가게 합니다. 다시 말해 적극적으로 그 사람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섬기고 아낌없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기적이지 아니하고 온전히 이타적입니다. 그래서 본문 10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0).”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이 시기를 알며 완전한 구원의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11).”

여러분, 우리가 영적으로 잠자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물론 지금은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때인 것은 사실입니다. 무신론을 비롯해 도처에서 사람들이 복음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있으며, 또한 우리 역시 세상의 거대한 죄악 앞에서 연약하여 쉽게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웠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 우리가 어떻게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할까요?

이는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니 시기하지 않는 것입니다(13). 나아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는 것입니다(14). 간단히 말해 세상을 선택하지 말고, 예수님을 선택하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이 말씀은 어두운 죄와 사망의 길 속을 걷던 아우구스티누스를 변화시켰습니다. 지금 죄와 사망의 길을 걸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가 깨달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본성상 사랑도 하기 싫고 거룩한 삶을 살기도 싫지만, 그러나 날마다 날마다 천국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12월이 되어 차가운 겨울이 다가오면서, 저는 더욱더 아침을 깨워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이 힘들었고 아침부터 다른 장막 형제들을 섬기는 것이 점점 귀찮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이기적인 마음이 자기 부인을 정말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다른 사람들은 나를 섬겨주지 않는가, 나를 왜 이해해주지 않는가 생각하며 마음에 불평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었고, 심지어 그 얼굴도 짜증이 나서 보기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며 참으로 내가 구주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입은 자인데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온전히 죄인이요, 죄인 중에서도 괴수였습니다. 이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성부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을 내어주셨는데, 이 사랑에 빚진 자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제 사랑은 지금까지 조건적이고, 또 이기적이었습니다. 내게 이득이 없으면, 그 사랑은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주님, 이런 사랑 없는 죄인을 깊이 회개합니다. 제게 사랑을 가르치시고 사랑하게 하옵소서.

또한 지금 이 때가 어느 때인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오늘 당장 오신다면 제가 이 예수님 앞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날마다 죄를 범하고, 다른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 적이 없나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비록 때는 어두우니 어두울수록 새벽이 가까움을 바라보고, 깨어 기도하고 날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기를 기도합니다. 육신보다 예수님으로 늘 옷 입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