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나 먹기/신약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마태복음 6:1-8)

 

마태복음 6:1-8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제자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 앞에서 의를 행하기 쉽습니다. 사람의 칭찬과 인정을 구하려는 속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 행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지 못합니다. 당시 구제할 때, 외식하는 자는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구제할 때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체마저도 모를 만큼 은밀히 해야 합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이 경건하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입니다. 힘든 마음을 은밀히 토로할 때, 하나님은 나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은밀하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 사죄의 은혜를 덧입혀 주십니다. 제자는 중언부언하는 이방인의 기도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로 하여금 구하도록 하시는 것은 기도가 하나님과 관계성을 맺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금식할 때, 외식하는 자처럼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상 대신 하나님의 상을 소망해야 합니다. 제자는 은밀한 경건 생활을 하는 자입니다.

사실 경건의 문제는 종종 많은 사람들을 수렁에 빠뜨립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경건이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칼뱅이 경건에 대해 한 말도 맞습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두려워하고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경건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것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사실을 잃어버리면, 종종 사람들은 겉으로는 경건하나 속으로는 곪아 있는 삶을 살기 쉽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 특히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기보다, 오히려 겉으로 칭찬 받으려고 공개적으로 경건함을 과시했습니다. 또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선한 행위, 즉 구제 행위 등을 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땅에서 이미 칭찬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지 못하는 자가 되었습니다(마 6:1).

 

그럼 그렇다고 해서, 공식적인 대표 기도 같은 것이 쓸모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공식적인 기도도 필요하고, 또 때로는 경건함이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이 본을 삼은 기도는 바벨론 땅에서 드러내어 기도한 다니엘의 기도였습니다. 그럼, 다니엘의 기도는 가식적이고, 비경건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역시 경건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방 땅 바벨론에 드러나는 것이었기에 그는 드러내어 기도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혹자는, 이런 외적으로 드러나는 기도 활동에 대해 심기가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자신이 옳고 그르냐를 판단하기 이전에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지를 먼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 7:17).” 사실 남의 의와 경건을 온전히 판단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이 어떻게 선 줄 그 사람 속을 우리가 어찌 알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의 문제를 꼬집은 것은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판단하기보다 먼저 자신이 온전히 경건과 의를 행하고 있는 지를 먼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어제 저는 런치 메시지를 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과욕을 부렸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기보다는, 나의 논리와 지성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씨름하여 메시지를 준비했으나 결국 그 메시지는 취소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얻었던 좋은 교훈은 결국 하나님이 나에 앞서야 하시며, 또 그 분의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드러나고 내가 영광 받으며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보다 나의 논리와 지성이 앞선다면 결국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저를 징계하심은 저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저의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또 나 자신의 야망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앞서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이 세워지고 제 삶에서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을 향한 경건이 다시 자리잡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참된 경건일 것입니다.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니(요한복음 3:30)” 그리고 진실로 이런 경건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에도 응답하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