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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먹기/신약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요한복음 2:1-2:11)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


요한복음 2:1-2:11

요한복음 2장 11절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님께서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신 후 사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 때 갈릴리 가나라는 동네에 혼례가 있었고, 예수님과 제자들 역시 혼례에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혼례식장에 한가지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는 그 경사스러운 자리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술이 없어도 기쁨이 충만한 교회 결혼식에서는 이 일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통 잔치 자리에 있어서, 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하객들은 술을 먹고 좀 취기가 올라야 기쁜 마음으로 축복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요즘에도 결혼식 피로연에서 술이 떨어지면 인상을 쓰고, 담당자들을 닥달하는 하객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술이 떨어지는 사태는 특히나 당시 결혼식에 있어서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전통 관습상 이처럼 술이 떨어지면 법정에 고소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설령 고소까지는 당하지 않더라도, 신랑과 신부는 하객들로부터 이런저런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되고, 떠들썩하니 즐거웠던 혼례 잔치집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함께 일하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사실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아진 상황을 방관하고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 잔치집 주인이나 신랑, 신부, 연회장을 탓하고 사람들과 같이 비난할 수도 있었습니다. 조금 좋은 마음을 품었다면, 다른 집을 돌아다니며 포도주를 구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좀 달랐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상식적으로는 참 신기한 일입니다. 상식적으로 예수님께 포도주를 구하는 것은 조금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렇게 행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신성을 확신했고, 또 이 상황을 간과할 분이 아니신 선하신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문제 앞에서 무력한 분이 아니십니다. 또 팔짱끼고 외면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우리 문제를 다 아시고, 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 앞에서 기도하며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문제 앞에서도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처럼 행할 때, 우리는 마리아를 통해 일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일하실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복의 근원입니다. 그러니 더욱 마리아와 같이 기도하는 자, 특별히 중보기도하는 자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하십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디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제가 예수님처럼 제 어머니의 부탁에 이렇게 대답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자식놈이 좀 크고 머리 굵어졌다고 엄마를 정말 하찮게 본다’고 화를 내시며, 한 달 가까이 저와 말도 안 하실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여자여’라는 말은 여성에 대한 존칭 표현입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은 마리아에 대해서 존중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처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아니함은 예수님께서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공적인 관계성을 세우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좀 섭섭할 수는 있겠지만, 예수님은 장차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할 그 때를 향해 나아가고 계십니다. 이제는 성자 하나님으로서 일하실 때였습니다. 그러니 이처럼 부르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은 거절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당장 이 일에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때는 하나님의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지금 당장 포도주를 솟아나오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때가 아니면 하실 수 있으셔도 하시지 않으실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지금 당장 즉시 응답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 역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당장 즉시 이루어주시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주로 우리는 이런 기도 응답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종종 낙담합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지를 찾기도 하고, 포기하거나 심할 경우에는 도리어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도 합니다.


그럼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마리아처럼 행동하면 됩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결코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리아는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종할 하인들을 예비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도한 후에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만한 환경,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순종할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와 순종할 사람들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명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이 항아리는 당시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위해 물을 담아두던 항아리였습니다(6). 이 물은 당장은 필요없는 물이었습니다. 결혼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죽은 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하인들은 물을 항아리 아귀까지 가득 채웠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8)” 하인은 죽을 각오를 하고, 연회장에게 갖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연회장이 “지금까지 그대는 좋은 포도주를 숨겨두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결혼식의 기쁨을 가져오지 못하던 죽은 물이 이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기쁨의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안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쓸모없는 고이고 죽은 정결 예식의 물이 결혼식 분위기를 살리는 기쁨의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10년 신입생 때 저 역시 이런 변화를 추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유학적인 삶을 사랑했습니다. ‘수기치인’ 이것이 유학의 근본이었습니다. 자신을 갈고 닦아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킨다는 것, 그리하여 사회를 정의롭고 아름답게 하는 것, 이를 행할 수 있는 공자와 맹자와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너무나도 힘들고 불가능하다는 것이 곧 드러났습니다. 대학생활 후 저는 곧 갈피를 잃고 흔들렸습니다. 열심히 여러 유학자들의 책을 찾고, 여러 철학자들을 찾아 대학교 서가에서 수업도 빼먹고 들어가 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떨어지는 성적에다, 여러 선배들로부터 게임과 술을 전수받고 섭렵함으로 생활이 난장판이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학사경고를 받고 기숙사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런 제가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정의롭고 아름답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도리어, 이전에 알고 있던 여러 올바른 삶의 기준들이 저를 옭아매었고, 이런 기준에 못 미치는 제 자신에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대 나와 사람된다’는 말도 것도 거짓말이었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더욱 제 자신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게차를 박거나 여러 크고 작은 일들로 위축된 저는, 계속해서 실수를 저지르는 악순환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간힘을 써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에도 저도 끈질겼습니다. 이번에는 스피치 학원에 다니며, 어떻게든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말을 잘하면, 이런 저도 변화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당당하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될 거라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 새학기에 시작되고 중간고사가 생각대로 잘 안 풀리니 저는 두려움에 빠졌고, 이전처럼 죽은 인생으로 들어갈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에게 예수님께서 목자님들을 통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공부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저를 변화시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5년간의 방황과 실패와 좌절이 그 때 저를 겸손하게 하였고, 저는 일단 말씀을 꾸준히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드러나신 능력의 예수님을 믿고, 한 번 저의 눈 앞에 있는 성적 문제부터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은 큰 권세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1.74의 학사경고를 받았던 자가 4.5학점 만점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내 자신을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바꾸고자 하였는데, 그렇게 안 되던 것이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니 이렇게도 쉽게 바뀐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게 되었고, 그 후로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또 다른 변화를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은 저를 통해 고대 캠퍼스가 변화되고, 제가 고대 캠퍼스의 모든 학생들을 기쁘게 하는 기쁨의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의 또 다른 꿈입니다. 그래서 직장을 구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고대 캠퍼스를 섬기고, 그들을 실로 기쁘게 될만하게 할 만한 하나님의 포도주로 살고자, 이제는 고대 근처에서 꾸준히 섬기는 직장을 찾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가채점 해 본 결과 좀 처참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낙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건대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의 선한 역사를 믿게 됩니다. 5년 전 저에게 찾아와 죽은 물과 같던 자를 변화시킨 예수님께서, 저를 변화시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저를 온전히 최상급의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시고, 이 캠퍼스의 기쁨의 포도주가 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고대의 학생들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한마디: 기쁨의 포도주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