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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먹기/신약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게도냐 교회들은 많은 시련 속에 있었습니다. 또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마음에 기쁨이 넘쳤고 기근을 만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넘치게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그들 마음에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호전되고, 부자 되는 것이 은혜가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 기뻐하는 것, 가난 속에서 헌금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마음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힘에 지나도록 넘치게 헌신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했습니다. 그들이 드린 것은 돈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우리 현실은 늘 어렵습니다. 형편이 좋아져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사람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시련 속에서 기뻐할 수 있는 힘과 자유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실 때 고난 속에서도 아름다운 헌신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 얼마나 가난한 자였습니까? 믿음도 없고 소망도 없고 사랑도 없는, 영혼이 메마르고 헐벗은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부요케 하시려고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가난한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천국을 누리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헌금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성도를 위해 헌금하는 일은 예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시작한 헌금을 성취해야 합니다. 또 그들은 헌금을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믿음과 말과 지식과 사랑이 풍성하다면 헌금도 풍성해야 합니다. 헌금을 풍성하게 할 때 예수님의 은혜가 풍성해집니다. 나를 부요케 하려고 가난해지신 예수님의 사랑이 내 안에 풍성해집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 중단된 연보를 다시금 성취할 것을 말합니다. 이전에 고린도 교회는 흉년을 맞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연보를 하겠다 결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흐지부지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더 상황이 어려운 마케도니아 교회도 연보를 자원하다 못해 힘이 지나도록 하였음을 이야기합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부요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사망으로 말미암는 그 가련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가난하게 되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고 낮은 이 땅에 죄인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따라, 고린도 교회 역시 본인들이 시작하였으나 중단한 연보의 역사를 성취하라고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 내어놓지 않는 그 완악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많은 어려운 일들이 국내외에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제가 드린 헌금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저의 정욕을 위해 쓰면서도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이웃을 위해 쓰지 않는 이 완악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시 주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첫사랑을 다시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가, 이 사랑이 이웃을 향해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필요하다면 손해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시절이 참 후회가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삶은 이웃을 위해 연보도 하고, 사랑이 삶으로 드러나는 인생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다만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