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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구약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이사야 40:9-31)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


말씀: 이사야서 40:9-40:31

요절말씀: 이사야서 4028, 29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누군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시냐’ 라고 물으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답을 하시겠습니까? 또 “여러분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물으면, “실제로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으며, 또 이 분이 우리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물으면 여러분들은 어떤 대답을 하실 것입니까?


이 질문을 ‘왜’ 하느냐에 대해서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있어서 대답을 회피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진정 아는가, 그리고 내 삶에서 진정 살아 일하시는가를 믿는가는 그 사람의 삶에서 절대절명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특별히 오늘 말씀이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어두운 눈을 열어주셔서, 이 말씀을 통해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비춰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뿐만 아니라, 이 하나님을 우리 삶 가운데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9-11절을 보세요.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에게 찾아올 아름다운 복된 소식을 크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소식은 무엇입니까? 주 여호와, 곧 성부 하나님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며, 그 분께서 상급과 보응을 베푸시며, 친히 양떼 이스라엘을 온유한 목자와 같이 다스리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참 좋은 소식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소식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당시 이사야 선지자가 살던 당시는 대제국 앗시리아의 정복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앗시리아는 오리엔트 세계를 최초로 통일한 대제국으로서 그 힘과 권세가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을 순식간에 멸망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남쪽,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제외한 전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앗시리아의 대군이 몰려와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여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습니다. 비록 그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이들은 대패하여 물러갔지만, 여전히 앗시리아 제국이 으르렁대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막막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팔팔한 청소년들조차 잘 먹지 못하고 또 마음에 불안과 염려가 가득하여 늘 피곤해했고. 혈기왕성함을 자랑해야 하는 20대 청년들조차 노인들처럼 종종 힘없이 넘어지고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희망적인 소식이 들리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는구나(27절 참조).” 아마도 대놓고는 이야기는 못할 지라도, ‘에이 무슨 소리.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앗시리아는 어쩌지 못할 것이야.’ ‘하나님은 나하고는 너무 멀리 있는 존재야. 이런 일이 있을리가 있겠어?’ 등등 그저 속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하기 일쑤일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말씀 공부하면 공부를 더 잘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흘려 듣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경제가 불황인 이 시기에 백수가 되지 않으려면, 성경공부는 너무나 쓸 데 없는 것이고, 다만 스펙을 잘 쌓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시간 스펙 갖추고, 공부하기도 바쁜 데 반면, 말씀 공부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을 의지하며 공부하라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어 보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때때로 이것이 너무나 뜬 구름 잡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첫째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당신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과 비교하며 말씀하십니다. 12절을 보실까요?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여러분 중에 한번 태평양을 손으로 재어 본 사람이 있습니까? 뼘으로 하늘 크기를 재신 적이 있습니까? 땅의 흙과 먼지들을 모두 모아 되에 잰 사람이 있습니까? 접지 저울과 막대 저울로 언덕을 달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연히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요?


13,14절을 보실까요? 여기 계신 분 중에서 하나님을 지도하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 조언한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의논한 이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교훈할 자가 여기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정의의 길, 지식, 통달의 도를 가르칠 자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합니다. 없습니다. 우리 중에 완벽히 정의롭고, 지혜로우며, 모든 지식에 통달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정의로우시고, 지혜로우시며, 모든 것에 통달하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전 세계와 스스로를 비교하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전 세계는 어떻겠습니까? 그 분께는 통의 물 한방울 과도 같으며, 저울의 티끌 같으며, 섬들은 먼지에 불과합니다. 만약 하나님께 집이 있다면, 땔감에 쓰기에도 부족하겠고, 제대로 제사하고자 한다면, 전 세계 짐승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세상은 아무 것도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작은 먼지를 무시하듯, 하나님께서도 이 모든 것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우상과 스스로를 비교하십니다. 우상은 어떤 존재입니까? 장인들이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고작 화려하게 은과 금으로 치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상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종 이 우상을 숭배합니다. 그것이 뭔가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상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생명 없는 목재나 돌, 금속으로 만든 물건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온 천하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손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계시며 살아서 지금도 일하고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높은 자들과 비교하십니다. 22-24절까지를 보실까요? 이 세상에 여러분이 아시는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박정희? 오바마? 워렌 버핏? 반기문? 루이 14?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들의 권세는 늘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죽었고 또 죽습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높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시기에 지상의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곳에 계시며, 또 누구보다 높으시기에 세상의 모든 권세자들을 높이시고 또 낮추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높은 이도 능히 폐하시고 또 세상의 권력자도 순식간에 천하게 하실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25절에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이처럼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26).”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눈을 들어 나를 봐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았고, 지금도 그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단다.’ 그런데도 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도 앗시리아는 어쩔 수 없어’ , ‘하나님께서도 이 일은 해결할 수 없을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전능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 하나님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특히 오늘날 우리는 이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그러기를 원하십니다. 2600년전 이사야의 시대 만큼이나 지금의 세상 역시 매우 어둡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불황의 경보가 쉴새 없이 울리는 가운데, 많은 학생들 역시 답답함과 무력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얼마 전, 한 경영대 후배가 자퇴한다는 대자보를 내건 바 있습니다. 그 대자보에서 이 후배는 취업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대학교에 큰 환멸을 느꼈고, 이에 도전하기 위해서 자퇴서를 낸다고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으며, 참으로 많은 학생들이, 그리고 제 자신도 겪고 있는 청년들의 답답함과 어려움, 그리고 절망을 깊이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상식상 미래에 좋은 것이 오기 바라기가 힘든 시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하나님을 기억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절망과 답답함과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서도 우리를 능히 일으켜 세우심을 믿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29).”


지금 이 세상은 분명 거칠고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30절 말씀처럼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는” 때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자들은 다릅니다. 그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31).”


저는 링컨의 이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성공의 비결을 묻는 한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다른 사람들보다 실패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나는 실패할 때마다 실패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배웠고 그것을 징검다리로 활용했습니다. 사단은 내게 실패할 때마다 '이제 너는 끝장이다'라고 속삭였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실패할 때마다 '이번 실패를 거울삼아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사단의 속삭임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지요." 이처럼 절망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기울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사람을 결코 실패가 삼켜버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은 새 힘을 얻어 강력한 독수리가 비상하듯 강력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한없이 달려도, 걸어가도 피곤치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그리고 제가 이 하나님을 늘 기억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지극히 높으시며,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날마다 덧입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어려움 가운데 대학생활을 맞이한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신실하시고 강하시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넉넉히 우리에게 이 어두운 세상을 이길 힘 주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