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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Covid-19] 눈치가 아니야, 문제는 민주주의야!

사진: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이번에 우리나라가 코로나 잘 막는 이유가 개인주의적인 서구권과 다른 눈치 문화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서구의 개인주의라기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나라들에서 정치와 시민사회가 이반되고, 또 사람들이 국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대부분 상실하고 국가와 시민 사이의 신뢰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본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신자유주의(New Liberalism)이 영국과 미국에서 나타날 즈음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국가적 이슈에 동참하고, 적극적으로 시민적 활동을 정치 세력화로 이끌었으며, 지식 엘리트들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내놓았다. 요즘 강남 좌파라는 사람들은 19세기, 20세기 초에, 이미 영국의 페이비안주의자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개혁을 추구하는 지식인들이 대거 나타났고...

 

그래서 영국은 자유당 대신에 노동당이 떠올라서 보수당과 대결하였으며,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남부주를 대변하던 입장에서 탈바꿈하여, 윌슨을 거쳐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예 정치 지형이 뒤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영국과 미국은 양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파시즘, 스페인독감도 정치적, 사회적인 차원에서 하나 되어서 이길 수 있었다. 그때도 영국과 미국 사람들은 매우 개인주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이웃의 안녕이 나의 안녕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또 민주주의의 확대와 전환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방향을 잡았다. 즉, 민주주의가 되고자 하였기 때문에,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집단적인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왜 오늘날, 서구권은 실패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서구권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힘으로 기존 정치 현실을 뒤엎는 것에 대해 기대하지 않으며, 다원주의라는 허울 속에서 개별 목소리, 개별 행동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뿔뿔히 흩어진 이들이 트럼프와 같은 기존 권력자들을 제대로 대항할 수 있겠는가. 기존 정치 엘리트들이 방역 전문가들의 말을 귓전으로 듣고, 제 멋대로 정치적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니, 또 사람들은 더욱 더 분열하고 있고...

 

물론, 우리나라가 눈치의 문화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눈치의 문화만으로 이번 일을 대했다면, 눈치 본다고 긍정적인 변화가 없을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사람들이 눈치대로 행동했다면, 대통령을 탄핵한 촛불 시위라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결국 문제는 민주주의의 실패냐 성공이냐의 차이이다.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가의 여부가 이번 코로나 방역의 성패를 가르고 있는 것이다. 눈치가 아니라, 정치와 시민이 서로 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는가, 민주주의! 바로 이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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