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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리뷰/번역물

존 파이퍼의 Final Alive(p.7-p.12a)

Finally Alive

 

~우리가 다시 태어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저자 존 파이퍼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3:7-8)”

 

서문

 

어거스틴, 루이스, 바나(Barna), 그리고 성경

 

우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요한복음 3:7)는 예수님의 선언은 그의 영혼의 주인이려는 사람에게 속이는 것이거나 망연자실하게 하는 것이다. 죄 속에 있는 우리의 무력함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의해 고안된 성경적 현실(reality) 중에서 이 보다 나은 것은 많지 않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최종적으로 영혼을 다스리는 이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바람이다.

 

새로운 탄생에서 하나님의 영의 자유에 관한 두 이야기는 우리가 A.D 386년에 성 어거스틴이 그리스도에게로 어떻게 회심했는지, 그리고 1931년에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이 어떻게 되었는 지에 관한 표면적인 고정관념을 피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이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그것은 불신과의 긴 시간의 싸움 후에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최종적으로 회심시키는 힘과 함께 불었던 방식은 이들에게 각각 매우 크게 다른 것이었다.

 

어거스틴의 이야기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에게서 그를 떨어지게 하였던 우상은 음란(sex)이었다. 그는 지난 16년동안 그의 열정들에 빠져들었다. 그는 16세에 가출을 했지만,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결코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거의 32세가 되었다. "저는 [오 주여] 당신을 누리는 데 필요한 힘을 얻는 수단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까지 이 수단들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 들 중 하나가 찾아왔다. 그 날은 386년 늦은 8월이었다. 어거스틴은 약 32세였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알리피우스와 함께 그는 이집트 수도사인 안토니의 뛰어난 희생과 거룩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다른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고 거룩할 때, 그 자신의 정욕으로의 추한 속박에 의해 고통 받았다.

 

"우리가 머문 집에 속한 작은 정원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정원에 대피한 내 가슴 속에서의 소란에 의해 끌려가는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내가 나의 경쟁자인 곳에서 격렬한 투쟁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온전함을 가져올 광란에 빠져있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삶을 가져올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필사적이고 당신의 의지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당신의 언약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격렬한 분노에 정복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고 나의 이마를 나의 주먹으로 두들겼습니다. 나는 깍지를 꼈고, 나의 무릎들을 끌어 안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얻음이 읽음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다 명확하게 보기 시작했고, 은혜의 기적에 의해 그리스도의 앞에서의 정결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했다. 그 싸움은 그의 육체에서 끄는 "사소한 것들"에 대비하여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에서의 절제의 아름다움으로 귀결되었다.

 

"나는 나 자신을 무화과나무 아래로 던졌고, 나의 눈에서 이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나는 이웃집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소년의 목소리였는지, 소녀의 목소리였는지 말할 수 없지만, 계속해서 그 노래는 "그것을 가져다가 읽으라, 그것을 가져다가 읽으라"라고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급히 알리피우스가 앉아있는 곳으로 돌아와 [바울 서신들 중 하나]를 잡고 그것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잠잠히 나는 내 시선이 닿은 곳의 첫 구절을 읽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13,14)." 나는 더 이상 읽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고, 더 읽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내가 그 구절의 끝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확신의 빛이 나의 마음속으로 밀려오고 의심의 어둠이 쫓겨나는 것 같았습니다."

 

어거스틴은 다시 태어났다. 그는 결코 과거의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바람은 정원에서 불었다. 그것은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불었다. 그것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불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 속의 어둠은 쫓겨났다.

 

루이스의 이야기

 

1925년부터, 루이스는 옥스퍼드의 막덜렌 칼리지의 명예 연구원으로 있었고 영어영문학 강사로서 봉사했다. 루이스는 아마도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로서 오늘날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31년 9월의 어느 저녁, 루이스는 J. R. R. 톨킨(반지의 제왕의 저자)과 휴고 다이슨(Dyson)와 함께 기독교에 대해 토론하였다. 회고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음날에 이어질 회심을 위한 자리에서의 것들을 놓고 계셨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거스틴과 달리, 그의 회심은 비감정적이었고, 명백한 투쟁 없이 이루어졌다. 모든 투쟁은 이전에 지나갔다. 여기 동물원으로 가는 그의 구원 버스 이야기를 그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 지 나타나있다.

 

"나는 언제 마지막 단계가 있었는지 잘 알지만,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어느 화창한 아침에 윕스네이드로 가고 있었다. 우리가 출발할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동물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믿었다. 그리고 아직 생각 속에서의 길도 엄밀하게는 쓰지도 않았었다(And yet I had not exactly spent the journey in thought). 거대한 감정도 없었다. "감정적인"은 아마도 우리가 가장 중요한 사건들의 중 일무에 적용할 수 있는 마지막 단어이다. 그것은 긴 잠을 잔 인간이 여전히 침대에서 움직임 없이 누어있고 그가 이제 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와 보다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은 버스의 꼭대기의 순간 같이 모호했다. 자유, 또는 필수불가결함? 아니면 그것들의 최대치에서 그것들은 다른가?"

 

거의 새로운 탄생의 순간에서의 광란으로 달려가는 것이든, 또는 동물원으로의 버스 안에서처럼 조용하게 경험하는 것이든, 그 사실은 실은 엄청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안다(요한일서 3:14)"고 말하는 것보다 그 어떤 것도 이 두 사람의 영혼에게 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