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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리뷰/번역물

완본: 존 파이퍼 목사의 설교 (요한복음 6:41-51)

 

(요한복음 6:41-51, 개정개역판)

 

[4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우리가 사망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일과 특정한 사람들의 눈 멈과 반발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다 넓고 일반적인, 세계에 대해 구속을 주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믿는 모두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는 의향을 가지고 계신다는 관점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일례로, 요한복음 가운데서, 요한복음 2:19절 “자, 보라. 세상 죄를 가져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하심이라”, 그리고 요한복음 4장 42절 “우리는 아나니, 이 사람(this)은 실로 세상의 구주시로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 33절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그(he, 여기서는 예수를 지칭)이시다.”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보게 됩니다.

 

복음은 전 세계적인 것(Global)이다.

우리가 이것을 명확하게 유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지역적이지 않으시다. 민족 신이 아니십니다. 기독교는 모든 민족과 인종과 문화와 지역과 사회 경제와 교육적 장벽을 초월하는 전 세계적인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용서와 영생을 베푸심은 보편적인 베푸심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실을 놓치지 않도록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받을 것이다(요한복음 3:15)”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질 것이다(요한복음 3:16)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정죄 받지 않는다(요한복음 3:18)

“누구든지 아들(독생자 예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요한복음 3:36)”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갖는다(요한복음 5:24)”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복음 6:35)”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요한복음 6:37)”

“누구든지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요한복음 6:47)”

“누구든지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토록 살 것이다(요한복음 6:58)”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생명수의 강이 (안에서부터) 그의 심장(heart) 밖으로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7;38)”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어둠 속에 있지 않을 것이다(요한복음 12:46)”

기독교인들은 구원의 은혜를 아낌없이 베풀어야 합니다(Christians should be lavish with the offer salvation).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것에 대한 소식과 가르침으로 쌍둥이 도시를 채워야 합니다(사도행전 5:28).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요구하시고 동시에 일부만을 이끄신다. (God both Desires All and Draws Some).

그래서 우리가 때때로 이 복음 속에서 특정한 사람들의 눈 멈과 반역을 이기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방식에 대해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도 부정하지도 축소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또한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들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소식-믿는 모두를 위한 대가 없는 베푸심(offer)-과 함께 전 세계에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로 정해진 자들만큼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And it is an awesome thing that as many as are appointed to eternal life believe)(사도행전 13:48).

하나님께서 모든 곳의 사람에게 회개할 것을 명령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사도행전 17:30).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will) 대로 회개함을 주신다(grant)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디모데 후서 2:25).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아는 데로 나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디모데 전서 2:4). 그리고 하나님께서 진리로 특정한 사람들을 이끄시도록(draw) 결정적으로(decisively) 행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요한복음 6:44).

 

하나님의 이끄심(drawing)은 명백하다(decisive).

지난번에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성부 하나님)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나에게로 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리라.”는 이 말씀에서 우리가 초점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이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오도록 결정적인 자극을 제공하는 것을 우리에게 남겨 두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5가지 이유를 내놓았습니다(And I gave five reasons why this does not mean God draws everyone and leaves it with us to provide the decisive impulse to come). 반대로, 저는 하나님의 이끄심이 예수님께로 우리를 이끄는 결정적인 자극임을 주장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선택하였을 때(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진리와 그리스도의 가치를 자각하게 될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자각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위대하심을 볼 수 있는 눈을 당신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이 메시지에서 다룰 2가지 일(task)

 

오늘 우리 함께 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두 가지의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요한복음에서의 이 해석에 가장 심각한 반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어떻게 이끄시는 지에 대해 요한복음 6장의 문맥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1)가장 심각한 반대를 불러 일으키는 것

먼저, 지난 주의 해석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반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한복음 12:32절에서 옵니다. 그의 생의 마지막 주 동안 예수님께서는 12:31-3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 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32 절의 "이끄신다"는 단어는 요한복음 6:44에서의 "이끄신다"에 대해 동일한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6:4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그리고 요한복음 12:32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모든 사람을 나에게로 이끌겠노라." 그래서 내가 지난 주에 주장했듯이 요한복음 6:44은 성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아들에게로 이끄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성부께서 이끄신 모두는 나옵니다. 왜냐하면 이끄심은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2:32절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로 모두를 이끄신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어떻게 이것들을 맞출 수 있을까?

어떻게 이것들을 서로 맞출 수 있을까요? 최소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6:55, 12:32에서의 "이끄신다"는 단어를 "명백하게 오도록 유발하는 것"보다 약하게 의미하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몇몇 사람들은 그것이 "간청하다", "부르다", "초대하다", 혹은 "모두에게 믿음 쪽으로 자유롭게 하는 격려를 제공하다" 는 것으로 의미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로 그것을 행하실지라도, 그 분께서는 명백히 어떤 사람도 이끌고 있지 않습니다. 그 분께서는 그것들이 시작하도록 하시고, 그들은 그리스도께로 나오도록 명백한 자극을 제공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방법은 12:32절에서의 "모두"가 세상의 모든 인류라기보다 예수님의 양 모두 혹은 하나님의 자녀 모두를 가리킨다는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 사례에서, 나는 이 두 번째 해결책이 가장 알맞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는 예수님의 양들을 가리킨다.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이라고 번역된 그 단어는 간단히 "모두(그리스어로 pantas)"라 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응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들릴 때, 나는 나에게로 모두를 이끌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 "모두"가 아마도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지 유사한 문맥으로부터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유사한 문맥은 이전 장(요한복음 11:50-52)에서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바 대제사장 가야바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상으로 진실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모든 족속, 방언, 사람들, 그리고 민족들로부터

이 마지막 단어들은 요한이 이 복음에서 그것을 제시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의 영향 범위(scope)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민족 집단을 위해서만 죽으신 게 아니라, "이방에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복음을 들을 때 예수님께로 효과적으로 이끄실 이방인들에 대한 언급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1:4-5절에서 말한 것처럼, 입양되어질(adopted)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좋은 대칭이라면, 그러면 요한복음 12:32의 "모두"는 모든 인류가 아니라 "모든 하나님 자녀"입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모든 족속과 방언과 사람들과 민족들에게서 말입니다(요한계시록 5:9).

 

양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

 

또는 당신은 "나는 내 양 모두를 이끌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15절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리고 요한복음 10:27절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혹은 당신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진리에 속한 사람들 모두를 이끌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8:37절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또한 당신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 모두를 이끌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47절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또 당신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성부께서 내게 주신 자들 모두를 이끌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6:37절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바꾸어 말하면, 요한 복음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이끄신다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들려지셨습니다. 요한복음 12:32절이 덧붙이고 있는 것은 전세계에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를 가리킴으로서, 그리고 믿는 누구나 구원받게 된다는 복음을 전파함으로서 오늘날에도 역사 속에서 이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들려지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귀머거리의 귀를 여십니다. 양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릅니다(요한복음 10:16,27).

 

2)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께로 어떻게 인도하시는가를 설명하기

두 번째 질문은 요한복음 12:32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고하게 할 것입니다. 둘째, 그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어떻게 이끄십니까?

 

그가 당신을 어떻게 이끄셨나요? 여기서 우리의 초점은 요한복음 6:45-47절에 있습니다. 44절에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십니다.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광을 가졌나니"

 

가르침을 받음으로서 이끌린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독생자 예수께로 이끄시는 지에 대해 사도 요한이 제공하는 대답은 그들을 가르치심으로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 그래서 이끄심과 가르침 사이의 관련성은 명백합니다. 이끌린 이들은 가르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받음으로 이끌렸습니다.

 

그리고 가르침 받음과 그리스도께로 옴은 깨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이도 가르침을 받지 않고는 나아오지 않을 것이라 정할 것입니다. 가르침은 그리스도께로 나아옴으로 진행합니다. 당신은 그것을 45절 하반절에서 가장 명백하게 볼 것입니다.

 

45절은 말합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everyone) 내게 오느니라.”(이것은 왜 내가 이 구절을 요한복음 12:32절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확정하는 것으로 말하는 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그들 중 몇몇만 나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모두가 나아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부께서 예수께로 어떻게사람들을 인도하지는 지를 묘사하는, 적어도 3 구절을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가르침을 받는 것”으로 부르고, 또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으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배우는 것”으로 부릅니다. “‘그들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리라.’ 아버지로부터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그것은 선지자들에게 있다

지금은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날까요? 당신에게 그것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어떻게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어떻게 그리스도께로 나아온 적이 없는, 당신이 사랑하는 저들에게 그것이 일어날까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오도록 매우 효과적으로 사람을 가르치실까요? “아버지께로부터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그것은 완전히 효과적입니다. 낙제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구원받는 관계 속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 일이 벌어질까요?

 

4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 54:13절을 인용하셨습니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저는 예수님께서 복수형인 “선지자들”이라는 표현을 쓰셨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에스겔과 예레미아, 이외에서도 또한 발견되는 새 언약의 약속을 제시하는 이사야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아 31:33-34에서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주 하나님을 알라”

이사야와 예레미아 모두는 명백하게 하나님의 가르침이 더 이상 돌판 위의 외부로 드러나는 것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내적으로 쓰여질 그 날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약에서 모든 진리의 총체이시자, 율법의 완성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리고 그 후에는 우리의 심령 속에서 실재하는 진리를 이루심으로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레미아 서에서 이와 같이 그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이사야서 54:13에서와 같이)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 (예레미아 31:33-34).”

 

예수: 하나님의 영광의 가장 충만한(완전한) 계시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가장 충만한(완전한) 계시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를 진리와 영광으로서 보는 것과 그에게로 나오는 것은 어떤 것보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예레미아가 말한 것처럼 “여호와, 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능하시며 천지만물의 창조자, 이스라엘의 왕이시자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곧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분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그를 보는 것과 그가 누구이신 지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반드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약으로 이끌리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이 어떻게 성부께서 아들로 우리에게로 이끄시는 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가르치심, 그리고 우리 의지를 낮추심

여기에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 지가 있습니다. 성부께서는 우리 마음에 예수님에 관해 성경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새로운 정보를 더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성부께서는 우리의 반역하는 의지를 정복하시고, 우리가 그가 진실로 누구이신가에 대해 그리스도를 자발적으로 알도록 하십니다. 그는 우리 의지를 겸손하게 하심으로 우리 마음을 가르치십니다.

 

이 설명에 대해 요한복음 7:16,17절을 보십시오: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우리 의지가 악할 때,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 알리라” 그리고 그가 여전히 반역 가운데 있다면, 그는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한가지 방법은 우리를 눈멀게 하는 반역을 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성부께서 아들에게로 인도하시는가를 말해줍니다. 우리를 가르치심으로, 아들을 보내심으로,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가치의 진리에 대해 눈을 멀게 하는 것들을 정복하심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저항을 정복하심, 그리고 우리의 눈을 여심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답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16,17).” 성부께서 진리에 대한 베드로의 저항을 정복하심으로 그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6절에서 같은 것을 가르칩니다. “어두운 데에서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복음이 알려지도록 하심

이것이 어떻게 당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렸는가를 말해줍니다. 이것이 어떻게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예수님께로 이끌릴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 속으로 당신을 인도하심으로 그렇게 외적으로 일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예수님께서 누구이신 지에 대해 알았을 때, 당신은 그에게로 나오게 되고 당신을 그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당신이 어떻게 이끌렸는가에 대해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이끌릴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우리의 일은 성경 말씀이 알려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명백하게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의 그의 사역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겸손케 하심, 가르치심, 이끄시는 일을 하실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당신의 능력의 거대한 분출을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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