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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아나셨다

 

마가복음 16:1-20

마가복음 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3일 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 날 이른 새벽부터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일어나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예수님을 찾고자 했던 것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과 향유를 바르기 위함이었습니다(눅 24:1). 이처럼 이들은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서 예수님은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이제 마음속에서의 작별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준비하고 무덤을 가던 그녀들의 염려거리는 누가 이런 이른 새벽에 동굴 앞에 있는 큰 돌을 굴려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굴에는 한 사람만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를 매장하게 되었고, 그래서 입구를 막는 돌은 아주 컸습니다. 여성들이 옮기기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도착한 그들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누가 다른 곳으로 굴려놓았던 것입니다. 4절을 보면 그 돌이 심히 컸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누가 이 돌을 굴려놓았을까요? 굴로 들어간 그녀들은 더욱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됩니다. 무덤 안에는 예수님은 없고 흰 옷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청년은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부활을 말한 것입니다. 또 그것이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하고 학교에서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다른 종교에도 부활이 있다고 주장하던 이였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혜공이라는 사람이 생선을 먹었는데, 그것이 배설물로 나온 후 얼마 안 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살펴보니 그런 설화가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성에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성경의 부활 이야기는 여러 증인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심지어 그 증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8절을 보시면, 여인들이 놀라서 혼비백산하여 집으로 도망하여 다른 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것이 너무나 초자연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토록 놀랐던 것입니다.

특히 9~13절에서 보듯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조금도 믿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다른 두 제자들이 부활 소식을 전해도 그들은 전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전에 예수님이 그렇게 부활을 증언하셨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믿지 않았던 증인들의 모습에서 예수님 부활의 역사성, 진실성은 더욱 더 부각되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그들 가운데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이 믿음 없고 마음이 완악하다며 책망하시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부활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이후 삶도 부활의 역사성, 진실성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온갖 박해와 순교를 당했음에도 부활을 믿음으로 신앙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부활을 증언하면 뻔히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처럼 부활을 증언했다는 것이야말로, 실제로 부활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항간에 떠도는 괴설과 설화, 가공의 이야기와 부활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이 실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혜공의 살아있는 생선 이야기와 다르게 실제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제 이른 아침, 죽은 예수님이라 생각하며 절망 속에 예수님을 보내야 했던 세 여성에게, 더 이상 예수님은 죽은 자가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사 승리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녀들이 비록 크게 놀랐기는 했지만, 곧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패배했다고 생각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담대해질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모든 방해와 핍박과 순교도 각오하며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이처럼 부활이 실제 있었음을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확실하게 믿지만 부활을 믿는 믿음이 약한 이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버티어나가는 힘이 적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거룩한 삶, 성결의 삶에 도전을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큰 죄와 허물, 세상과 사단의 방해공작 앞에서 낙담하고 절망하곤 합니다. 과연 이 생애 전체를 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과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는가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건 믿지 않던 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여러 증인들이 이를 삶과 말을 통해 확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힘입어 죄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의 은혜로 부활까지 실제적으로 누리게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부활은 실제 살아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심이고, 또 죄의 대가인 사망에서 우리를 살려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살아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는 아직 육체적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는 것처럼, 장차 우리 역시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며, 부활의 믿음이 적은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저는 패배주의가 강합니다. 내가 할 수 없을 거 같은 일을 할 때마다, 제 마음 속에서 망할 것 같은 두려움이 다가오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솔직히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지고 포기해버리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있는 것 같지만, 저는 좀 정도가 심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년 이 맘 때, 일신의 여러 문제들로 말미암아 전혀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의지하여 예수님 안에서 죽으면 무조건 산다는 믿음으로 물질 자립에 도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받으시고, 정보보호대학원에 저를 두시고 지금까지 지키셨습니다. 물질도 오히려 과분할 정도로 많이 받아서,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이번에 많은 촬영 장비들도 다 이 돈으로 산 것입니다. 겨자씨보다 못한 믿음을 받으시고 위대한 일을 일구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금도 부활의 믿음으로 도전할 일이 많습니다. 논문도 그러하고 캠퍼스 선교 사역도 그러합니다. 이런 일에 있어 저는 죽을 거 같고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은 것처럼 저도 무덤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은 겨자씨만도 못한 믿음이지만,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죄인을 다만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믿음 없는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 죄인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